1999년
한승헌(30회)

대학 재학 중 고등고시에 합격,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강직하고 청렴 결백한 법조인으로 일관했다.
특히 1960년 이후 계속된 군사독재 치 하에서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재야변호사로 꺼져들어가던 민주주의에 횃불 을 밝힌 민권 변호사이자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박해받던 Slot Games 수와 시국사범을 변호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던 중 반공법 위반 필화사건과 소 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21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감사원장을 맡아 부정 부패 척결과 감사기능의 공정 수 행으로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향과 모교 사랑도 각별하여 중요행사에 빠짐 없이 참석하며 전북인과 전고인의 명예와 권위를 드높인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1999년
임병찬(34회)

1965년 전주문화방송 Slot Games 언론계에 입문한 뒤 보도국장과 상무 이사를 거쳐 여수문화방송과 전주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했다. 이어 전북도민일보 사장으로 취임해 퇴임시까지 52년간 언론계에 몸담아 언론문화 창달과 지역사회 발전
에 앞장서 모교와 동창회 명예 및 위상을 크게 높였다.
또한 투철한 사명의식과 봉사정신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쳐 장애인 먼저 전북 실천협의회장,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과 중앙위원, 건강관리협회 전북 지부장, 지역발전위 대통령직속 자문위원, 전북애향본부 총재 등을 맡아 지역사랑을 실천했다.
이같은 공로로 국민포장(대통령), 적십자사 광무장 금상, 석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어려운 처지의 후배들에게 30여년간 장학금을 지급해왔으며, 모교 제 11, 12대 총동창회장을 맡아 임기 중에 동창회관을 건립하는 등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0년
유청(13회)

모교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한 뒤 정계에 입문, 1958년 제4대 국회의 원 선거에서 전주 지역구로 당선된 뒤 제5, 6대 잇달아 같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당선됐고 이어 제8대에서는 신민당 전국구 후보로 당선됐다.
이승만 독재와 군부 독재 시절 야당인 신민당 정무위원과 전당대회 의장을 역임하는 등 중진 정치인으로 활약 하면서 모교 명예를 빛냈다.
제6대 총동창회장을 맡아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1년
이철승(19회)

고려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정계에 투신, 광복 직후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이끌면서 전국학생총연맹의 대표의장과 반탁 전국학생총연맹의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에 학생대표로 참석했으며 1954년 전주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래 제 3, 4, 5, 8, 9, 10, 12대 등 7선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 장 및 신민당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정계 은퇴 후 자유민주연맹 총재, 자유민주민족회 의 대표상임의장,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정치계 거목으로서 조국 건국과 민주 발전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모교 명예와 위상을 드높였다.
2002년
박권상(23회)

서울대를 졸업한 뒤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 세계통신 정 치부장,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0년 독재 와 민주가 충돌하던 와중에서 군부 제5공화국에 의해 강제 해직되는 시련도 겪었다.
민주화가 복원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지냈다. 평생 언론계 에 종사하면서 언론문화와 언론자유 창달 및 신장에 힘썼고 사회정의 구현에 온몸을 바친 강직한 언론인의 전형으로서 모교 명예와 위상을 진작시켰다.
2003년
신건(36회)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지검 검 사를 시작으로 광주 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광주 고검장, 법무 부차관 등 요직을 거쳤다.
이후 국가정보원 차장과 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4월 전 주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당선돼 제18대 국회에 진출해 모교 명예를 빛냈다.
제13대 총동창회장을 맡아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04년
김선홍(28회)

기아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공장장, 이사, ㈜기아기공 사장, 기 아자동차 사장, 기아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 표준협회 회장, 생산기술연구원 이사 장, 기계공업진흥회 회장, 전국 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냈다.
‘봉고 신화’를 일군 국 내 자동차 업계의 대부로 한국자동차 산업을 주도하여 공업 입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한국을 경제강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 전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금탑·철탑 산업훈장, 한국경영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김동문의 공헌을 입증해준다.
2003년
진념(35회)

1962년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 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물가정책국장, 공정거래실장, 차관보를 지냈다. 이어 해운항만청장, 경제기획원 차관, 동력자원부 장관, 노동부 장관, 기아그룹 회장, 기획예산처 장관, 재경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를 역임했다.
오랜 기간 경제부처 장·차관을 지내면서 국가경제의 획기적 발전에 이바지, 전고인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특히 용담댐 건설 등 지역현안 사업 추진에 앞장섰으며 모교 본관 건축지원 등에도 힘써 지역 발전과 모교 사랑의 귀감이 되었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홍조근정훈장과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2006년
조세형(27회)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언론계에 들어가 한국일보 편집 국장과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
이후 4선(제 10, 13, 14, 15대) 국회의원과 주 일본대 사를 역임했다.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언론인과 정치인으로 한국 언론 과 정치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외교관으로서 국위 선양에도 헌신하면서 모교 명
예를 드높였다.
2007년
김원기(32회)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뒤 정치부 기자와 조사부장 등 을 역임하며 정론직필로 언론계에 족적을 남겼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0, 11, 13, 14, 16, 17대(이상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특히 제17대 국회에서는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직을 수행하며 민주주의 발전과 국회 위상제고에 공헌했다.
전북 지역 최대 현안인 새만금사업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앞장서 모교와 동창회의 위상을 높였다.
2008년
이연택(32회)

1965년 국무총리 비서실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81년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올림픽조직위원회 제2사무차장을 겸임하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쌓았다.
이후 총무처 장관, 노동부 장관을 거친 이 동문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제34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선 출된 이 동문은 2002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2008년 대한체육회장에 재선됐다.
이 동문은 장관과 체육회장을 역임하며 탁월한 행정능력을 발휘해 국가발전과 국위선양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재경 전북도민회장을 맡아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했으며 총동창회장을 맡아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앞장섰다.
이어 2019년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9년
조정남(37회)

1966년 유공에 입사한 뒤 42년간 국내 굴지 기업인 SK의 변화와 성장을 주도했다.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통신기술 발전과 세계적인 기술산업 수출로 국가경제 성장에 크게 공헌함으로써 모교 명예와 전고인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조 동문은 SK텔레콤 통신센터 전주지역 설립에도 앞장서는 등 고향 발전에 기여했으며 재경 동창회장을 역임하면서 동창회 발전과 모교에 대한 시 설지원 및 후배에 대한 특강 등으로 모교사랑을 실천했다. 동창회의 위상을 높였다.
2010년
유재신(24회)

모교인 전주북중 교사로 출발하여 전주고 교사, 교감, 교장과 전북 교육청 장학관, 제 7, 8대 전북도 교육감을 역임하면서 평생을 후학양성과 교육발전 에 이바지했으며 그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는 등 모교사랑과 동창회 명예를 드높였다.
특히 모교 교장 재직중 1980학년도 졸업생 90%를 명문대학에 입학시켜 명문고로서의 위상을 떨쳤으며 대강당 신축 준공 등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남 다른 열정을 쏟아 큰 발자취를 남겼다
2011년
임승래(27회)

전주 북중 교사로 출발, 도내 중·고교 교사, 교장과 민선 초대 전북 교육감을 역임하면서 평생을 후학양성과 교육발전에 바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는 등 모교 명예와 위상을 크게 높였다.
또 모교 총동창회 상임고문을 맡아 모교 와 동창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12년
강동석(34회)

경희대 졸업 후 제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해운항만청장, 수도권 신공항 건설공단 이사장, 인천 국제공항공사 초대사장, 한국전력공사 사장, 건설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공직을 떠난 후 인천 세계도시엑스포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공헌, 모교 명예를 빛냈다.
소신있고 일밖에 모르며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강직한 공직자로 정평 났다.
2013년
정동영(48회)

문화방송(TV)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뉴스 데스크 메인 앵커 로 활약하며 언론문화 창달에 이바지했다.
이후 정계에 투신하여 제 15, 16, 18, 20대 국회의원과 통일부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후보를 지냈다.
또 민주평화당 대표를 역임했다. 통일부장관 재임시 개성공단을 설립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과 민주정치 발전에 기여, 모교의 명예와 긍지를 높였다.
2014년
이강국(40회)

1967년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 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헌재연구관,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부 장판사 겸 법원 행정처 조사국장, 부산·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장을 거 쳐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면서 올곧은 법관정신으로 사법발전에 공헌, 모교 명예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19년 전주고·북중 총동창회장에 선임돼 동창회 발전에 헌신했다.
2015년
정남식(47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로 30여년간 봉직하면서 연세 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거친 의료계의 거목이다.
한림원 정회원, 보건복지 부 심뇌혈관 관리위 부위원장, 국민 고혈압사업단장 등을 맡아 한국 의료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 모교의 명예를 드높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대통령 주치의를 맡아 활동했다.
2016년
김춘진(46회)

치과의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해 제 17, 18, 19대 3선 국회의원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아 농어민 삶의 질 향상과 한센인 지원 등 국민 보건복지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농촌진흥청 본사 전북 이전과 새만금방조제 공사 추진에 기 여했으며 교육부 특별 교부금을 확보해 모교 도서관 신축을 지원하는 등 국가와 지 역사회 발전에 공헌하고 모교 명예를 드높였다.
2017년
서거석(50회)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임하면서 직선제 총장선거를 통해 전북대학교 제 15, 16대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대학교 교육협의회 회장, 전북발 전협의회 의장, 미국 프린스턴대와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전북대 총장 에 재임하면서 로스쿨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규모의 연구소를 잇따라 학교에 유치했 으며 ‘잘 가르치는 대학’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전북대를 전국국립대 최상위권의 명문 반열에 올려놓아 전북의 자존심을 높이고 모교 명예를 크게 빛냈다.
또 모교 동창회 상임부회장을 맡아 개교 100주년기념사업을 성공리에 추진하는데 앞장서는 등 동창회 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감
2018년
윤석정(34회)

포항 및 목포지방 해운항만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국내 해운업 발전에 힘썼으며 공직 퇴임 후에는 ㈜국제해운 대표이사를 맡아 우수한 기업으로 이끌었다.
또한 지역언론인 전북일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언론문화 창달에 힘쓰는 한편 (사)신석정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해 구름재 생가복원추진위원장, 전북애향 운동본부 부총재 등을 맡아 폭넓은 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힘써 모교 명예를 드높였다.
총동창회 부회장과 자문위원을 역임,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기여했다.
2019년
황은규(32회)

전주 축협 이사와 조합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축산업 발전에 기여, 모교 명예를 빛냈다.
동기회 회장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모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장학기금으로 거액을 쾌척하여 기금 조성에 앞장서는 등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2019년
김명곤(48회)

연극연출가로 활동하면서 국립중앙극장장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 문화관광산업 육성 발전에 힘써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 모교 명예를 높 였다. 또한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영화 ‘서편제’의 주연배우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 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모교와 동창회의 명예를 빛냈다.
2016년
고(故) 이종익(43회)

㈜삼익유가공을 설립, 지역사회와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 여했고 한국초등테니스연맹 회장과 화서학회 이사장으로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 모범을 보였다.
제13대 재경 전고·북중 동창회 회장을 역임하며 제1회 재경동문가족 어울림한마당 행사와 동서화합음악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모교 발전기금 기증과 총동창회 장학기금 모금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모교와 총동창회 명예를 드높였다.
※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재경동창회 추천에 따라 자랑스러운 전고인 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 광호 제15대 총동창회장) 심의를 거쳐 이종익 동문 1주기를 기해 2016년 12월15일 추서됐다.
